글쓰기에 관한 자료 하나
코딩과 교육/전문코딩 2008. 3. 18. 19:37
1.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이 책은 2003년 3월에 발행되어 이제까지 8쇄를 찍었습니다. 아직도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을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공계 과학자나 기술자가 얼마나 그동안 글쓰기에 어려움이 많았는지 짐작이 됩니다.
세상 일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누군가 복잡하게 해서 문제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 난을 빌어 과학자나 기술자가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가지 도움을 드릴 예정입니다. 당장 좀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면 다음의 사이트에 들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임재춘의 기술글쓰기’ ; www.tec-writing.com 이나 한글인터넷 주소 ‘임재춘’ 'SERI의 Technical Communication' ; www.seri.org/fr/ktca
제가 과학기술자 글쓰기와 인연을 맺은 사연입니다.
저는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73년 기술고시에 합격하여 과학기술처 원자력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원자력국에는 공채출신 사무관이 드물어 해외 교육이나 근무의 기회가 많이 주어졌습니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US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에 1년 간,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2년 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치는 것이 글쓰기였기 때문에 Technical Writing(TW) 교육을 받았습니다. 주로 미국인이 잘 틀리는 문법과 문체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이 교육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추후 영국 Lancaster 대학에서 MBA를 공부하면서 ‘뼈대가 반듯하고 논리적’인 TW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6년 간을 과학기술(처)부에서 근무하면서 기술직 공무원들의 보고서 작성이나 보고 요령이 행정직에 비하여 뒤떨어짐을 보았습니다. 고위직으로 올라 갈수록 기술직 공무원의 수가 현저하게 적어지는 현상도 글쓰기나 보고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은 하루 종일 읽고 씀으로 의사소통 능력은 곧 사회적인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글쓰기를 잘 하지 못하는 이공계 출신 기술자나 과학자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약도 그리듯이 하는 Technical Writing(기술글쓰기)’ 전파에 나섰습니다.
저는 미국의 TW기법에다 우리나라 기술자와 과학자가 많이 틀리는 부분을 정리하여 6시간짜리 ‘기술글쓰기’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수강생은 짧은 시간에 글쓰기의 두려움을 탈출할 수 있어 이 강좌의 인기가 높습니다. 또한 영남대학교, 인제의과대학, 한동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공대생을 위한 ‘의사소통기술’ 과목을 맡고 있습니다.
2. 글 잘 쓰는 이공계가 성공한다.
얼마 전, 동부건설에서 강의 요청을 해 왔다. 강의를 들으려 모인 사람은 180여명이나 되는 전국의 건설 현장 소장이었다. 건설 현장 소장이 왜 테크니칼 라이팅(TW) 강의를 들으려고 하는지 내가 우선 궁금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자결재 제도 때문이었다. 동부건설은 본사와 현장간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글로써 간결하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데 준비가 미흡하다"는 판단 하에서 전자결재를 당분간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자입찰 제도 때문이었다. 정부는 대형 토목공사에 2004년부터 전자입찰 제도를 도입할 예정인데 이때 입찰하는 회사는 입찰서에 기술의 독창성 등을 간결하게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는데 토목 현장 기술자는 그 동안 글쓰기와는 인연이 멀어 회사가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는 현장 기술자가 쓴 글이 곧 돈과 직결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도자는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능력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정치. 행정대학원)은 첫 시간을 의사소통에 관한 수업으로 시작할 정도로 의사소통능력을 중요시 여긴다. 이렇게 현대는 의사소통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자본론' 대신에 '의사소통론‘을 썼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 기술자는 의사소통의 경쟁력을 일찍 터득
의사소통능력은 정치나 행정에서만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경쟁력이 된다. 우선 미국에서의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술자는 직장에서 자신의 시간 중에서 적어도 1/3은 쓰기, 편집,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쓰기와 관련된 일에 소모하고 있다고 한다. 승진할수록 비율은 더욱 늘어나 중간관리자는 40%, 그리고 매니저는 50%를 쓰면서 보낸다. 이렇게 쓰기가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니 직장에서 쓰기가 경쟁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표1>은 성공한 직장인에게 문장력의 중요성을 물은 조사이다.
<표1> 문장력과 성공과의 관계 (성공한 엔지니어 245명을 조사)
질문1; 본인 업무에서 효과적인 문장력의 필요성은? | |
필수적임 |
110명(45%) |
매우 중요함 |
124명(50%) |
조금 중요함 |
9명(4%) |
| |
질문2; 부하의 문장력을 진급심사에 어느 정도 고려? | |
필수적임 |
63명(26%) |
많이 고려함 |
153명(63%) |
조금 고려함 |
25명(10%) |
이 표에서 보듯이 문장력은 출세에 필수적이거나 매우 중요하다. 특히 매니저들은 문장력이 업무에 ‘필수적’으로 보는 비율이 71 %에 달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엔지니어는 졸업 후 5년 안에 매니저가 될 수 있다’고 설문지에 써 놓았다. 이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직장에 가면 ‘제출하는 보고서가 곧 승진 청원서’가 된다. 따라서 직장의 초급 간부가 되면 테크니칼 라이팅과 프레젠테이션을 반드시 배우게 된다.
다음 표도 의사소통이 기술자에게 경쟁력이 되고 있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표2>는 미국에서 성공한 기술자 4.000여명을 대상으로 기술자가 직장에서 필요한 학과목을 조사한 결과이다. 1위부터 10위까지 공대 전공과목은 ‘확률과 통계’ 하나밖에 없다. 10위 마케팅도 반 이상이 의사소통능력을 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10위 이내 과목의 2/3 이상이 의사소통과 관련된 과목인 것이다. 공대 전공과목은 10위 이후에나 나타난다. 이 자료는 의사소통능력이 기술자에게도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표2> 산업체 근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학과목 (3-4년 근무 경력을 가진 4,095명이 응답)
1. 경영학 |
2. 기술자글쓰기(Technical Writing) |
3. 확률과 통계 |
4. 발표(Public Speech) |
5. 창의(Creative Thinking) |
6. 개인간 인화 |
7. 그룹간 인화 |
8. 속독(Speed Reading) |
9. 대화(Talking With People) |
10. 영업(Marketing) |
11. 컴퓨터 |
12. 열전달 |
13. 기기사용 및 측정 |
14. 데이터 처리 |
15. 시스템 프로그래밍 |
16. 경제학 |
17. 미분학 |
18. 논리학 |
19. 경제분석 |
20. 응용프로그래밍(이하 생략) |
과학자도 글을 잘 써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과학자가 정부 연구비를 신청할 때에 연구 계획서는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와 문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세금 납부자인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연구를 국가가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보고서가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너무 전문적이어서 내용 전달이 되지 않으면 그 보고서는 실패한 것이 되고 책임도 작성자가 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아예 과학자의 글쓰기 의무(The Code of Ethical Conduct by the Society for Technical Communication)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개념의 개발만큼 이의 전달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라.
- 읽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중요함을 인식하라.
- 기술적 사실을 진실하고, 명확하면서 경제적으로 전달할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라.
글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적어 나갈 때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사물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과학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위대한 작가가 많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보고 쓴 ‘비글호의 항해’는 생생한 묘사로 문학사의 고전으로 꼽히고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판매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나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도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 MIT 공대 부근에 있는 서점에서 지난 40년 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책이 작문 책인 'The Elements of Style'(Strunk & White)인 것이다. 본문이 100쪽이 되지 않는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이 ‘문장은 간결하고 짧게, 단문으로, 수동형은 피하고, 불필요한 단어는 무조건 빼라’인데 이러한 원칙이 오랜 세월동안 공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미국 공학 교육의 필수 항목이다.
직장에서 의사소통 능력이 경쟁력이고 글 잘 쓰는 기술자나 과학자가 성공하기 때문에 미국은 공대에서 TW나 프레젠테이션을 ‘공학교육인증제’의 일환으로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의 ‘공학교육인증제’
미국의 공학 교육이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여 산업계의 불만이 높았다. 기업은 공대 졸업자를 사내 재교육을 통하여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미국은 이러한 공학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공학교육인증원(ABET : The 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and Technology)을 설립하고 교육의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공과 대학의 95%가 이 인증제도에 참여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약 30개국과 협조하여 이 인증을 받은 대학 졸업자는 국가에 관계없이 1급 엔지니어로 상호 인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대학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대생에게 ‘효과적인 의사소통능력’을 배양하여야 한다.
TW는 미국에서 전문 직종이다
미국은 TW를 교육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전문 직업 분야까지 확대하고 있다. TW는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글쓰기’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이 매우 넓다.
<표3> Technical Writing의 정의
기술자나 과학자가 작성하는 논문, 연구보고서 및 기술보고서(협의) 직장인이 업무의 일환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광의) |
- 회사 내의 공문, 보고서, 작업지시서 및 제안서 |
- 회계 및 결산 보고서 |
- 투자유치서 |
- 제품의 사용설명서 등 |
상기 대상 가운데 회계 및 결산보고서, 투자유치서와 제품의 사용설명서에 Technical Writer라는 전문 직종이 관여하게 된다. 예전에는 회계 및 결산보고서를 회계직만 이해하면 되었으나 요즈음은 소액 주주가 늘어나면서 어려운 기술 및 회계 내용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 보고서가 쉽게 작성되지 않으면 결산 총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유치서도 마찬가지이다. 벤처에 투자하는 투자가는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첨단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벤처회사는 기술을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자금을 모을 수 없다. 또한 제품의 사용설명서는 Technical Writer가 가장 많이 관여하는 분야이다.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Law;일명 PL법)이 발효하면서 소비자가 설명서를 잘못 이해하여 입은 손해를 제조 회사가 배상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Technical Writer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 직업인이 10만 명이 넘고 대학에서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곳도 240곳이 넘는다. 요즈음은 TW이 Technical Communication(TC)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TC는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인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기술’로서 글에 국한하지 않고 그림을 포함한다. 컴퓨터와 정보 통신이 발달하면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온 라인 전자매뉴얼 제작이 TC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을 잘 못 쓴다
이공계 출신은 어느 나라 없이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이공계 출신은 글을 더욱 못 쓴다. 요즈음은 대학 입시에 논술이 포함되어 그래도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있으나 예전에는 그러한 제도도 없었고 뒤늦게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결재권자는 기술자가 올리는 보고문을 보고 한결같이 내용 파악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최고 경영자가 회의를 통하여 논의하던 업무를 전자 메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기술직 간부가 올리는 글이 관리직에서 올리는 글에 비해 형편이 없어 읽는 사람은 짜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이공계열의 몰락과도 관계가 있다
이공계 출신이 우리나라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난리이지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자신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봉급 기준으로 본 사회적 경쟁력은 기술 분야가 최하위에 있고 이 보다 금융이나 경영이 높다. 외교, 언론 및 정치는 더욱 월등하다. 뒤쪽으로 갈수록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을 보면 의사소통과 사회적 경쟁력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기술자가 담당해야 할 기술 경영, 기술 외교, 기술 언론 및 기술 정치를 비기술 분야에서 담당하는 것도 기술자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공계 출신의 옹알이는 집 밖에 나서면 아무도 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그 만큼 과학기술의 경쟁력이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술자가 푸대접을 받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기술이 천시를 받으면 결국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 진다.
글쓰기는 기업 경쟁력에도 직결된다.
이제 글쓰기는 기업의 생존 차원까지 확대되고 있다. 제품의 사용설명서가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는 제품의 사용설명서가 한결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이를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술을 수입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사용설명서는 주로 외국 매뉴얼을 번역한 것이었고 어차피 읽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기술을 개발하여 수출하는 제품이 생기면서 우리가 사용설명서를 만들어야 하고 제조물책임법에 의해 사용설명서도 법적인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CDMA 무선전화통신기술을 개발하였으니 보고 참고할 매뉴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이 작업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TW 전문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이 작성한 사용설명서를 TW부서가 잘 이해할 수가 없고 가까스로 이해해서 영어로 번역을 하지만 기술 수입국으로부터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용설명서는 2002년 7월부터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되어 사용설명서를 전문적으로 쓰는 매뉴얼 제작 업종이 급속히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난 호에서 이미 언급을 하였다. 제품의 사용설명서 이외에도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쓰기 분야가 많다. 투자유치서의 경우에, 예전에는 ‘묻지마’ 투자이니까 상관이 없으나 요즈음은 상황이 바뀌었다. 벤처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투자자가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벤처회사의 자금 확보가 어려운 것이다. 일반인이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투자유치서를 쓰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이 된다.
우리나라의 TW는 미국의 TC에 비하면 아주 초기 단계에 있다. 과학기술자가 작성하는 논문, 연구보고서 및 기술보고서 쓰기에도 미국의 TW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미국처럼 직장에서 작성하는 보고서나 투자유치서까지 포함하기는 요원하다. 그러나 제품의 사용설명서가 PL법에 포함되고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이 분야도 전문직종으로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공학교육이 이제서야 글쓰기에 관심
대학에서 인문, 사회과학 분야로 진출하는 학생은 그래도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지고 실력을 배양할 기회가 있으나 기술을 전공하는 공과대학 학생은 의사소통 분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실정이다. 공대생들이 분석과 분해에는 강해도 통합과 표현에는 약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공대생에게 의사소통 기술을 반드시 함양시켜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의사소통 기술을 키울 수 있는 ‘공학교육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아직은 시행 초기 단계라 아주 적은 수의 학교만이 참여를 하고 있다.
한국의 ‘공학교육인증제’
우리나라도 공학 교육이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여 산업계의 불만이 높다. 기업 인사담당자 300명에게 설문한 조사에 의하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지식의 26 % 만을 대학이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대학이 제공하는 실용 전문 지식이 없으니 일반적인 태도나 품성, 의사소통 능력을 보고 인재를 뽑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업은 이들을 뽑아 사내 재교육을 시키는데, 통계에 의하면 그 비용이 년간 2조8천억에 달한다고 한다. 산업자원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문교부와 함께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C: The 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Education for Korea)을 설립하여 인증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산업 현장의 경영자를 CEO 객원교수로 공대에 파견하고 있다. 2001년에 영남과 동국대학교가, 2002년에 인하, 울산 및 부경대학교가, 2003년에는 창원, 한국해양, 공주, 경상대학교가 이 인증을 받았다(공대 전체가 아니고 일부 학과가 이 인증을 받는다). 2004년에는 강릉, 광운, 동국, 부산, 연세, 한양대학교가 추가로 받을 예정이다.
공대 글쓰기 교육도 고쳐야한다.
인증제에 참여하는 대학은 공대생에게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을 가르쳐야 하나 마땅한 교재도 없고 가르칠 전문 교수도 없다. 주로 논문 작성법 위주로 강의가 진행되나 TW기법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글쓴이가 이 일을 제일 먼저 시작하였기에 앞으로 빠르게 이들 학교에 TW기법이 전파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증제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에서는 이공계 학생이 교양 과목으로 1년 간 글쓰기를 배우게 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가 대학 작문 교재는 아주 두꺼워 학생들이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이다. 사정이 이러니 그렇지 않아도 글쓰기에 관심이 적은 공대 학생을 글쓰기에서 더욱 멀리 멀어지게 하고 있다. 두 번째가 문학적인 글쓰기와 사무적인 글쓰기는 성격이 아주 판이하게 다른데 이를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데 있다. 문학적인 글쓰기는 재미와 감동을 위한 글로 기-승-전-결이 있다. 영화 ‘디 어더스(The Others)'를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알 수가 없어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사무적인 글은 먹고 살자고 쓰는 글이다. 사무실에서 상사한테 보고를 할 때 중요한 결론을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에 ’짠! 이게 결론입니다. 재미있지요‘했다가는 목이 몇 개라도 남아나지 못한다. 보고서나 논문을 작성할 때는 결론이 먼저 제시되는 TW기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식 TW기법을 그대로 수입하는 것도 효과가 높지 않다. 서울 공대는 지난 98년부터 여름 방학에 1주 동안 TW 분야의 최고급 교수를 미국에서 초빙하여 영어 논문 쓰기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글쓰기를 가르치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많은 ‘Essay'를 학생이 쓰도록 하기 때문에 글쓰기의 기본이 갖추어져 있어 대학에서는 주로 ‘English Style'에 초점을 맞춘다. 이 교수가 미국에서 가르치는 대로 한국에서도 ’English Style' 위주로 강의를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은 글쓰기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크지 않는 것이다.
이공계 글쓰기 쉽고 빠르게 배워 보자
글을 쓴다는 것은 전문 작가에게도 어려운 작업이다. 마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 교육은 마냥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있다. 이러니 글쓰기 교육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글쓰기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공계 출신 기술자나 과학자는 더하다. 해답은 없는 것인가?
글쓰기 방법을 바꾸면 해답은 있다.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사무적인 글쓰기를 하면 된다. 글은 아름다워야 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학적인 글은 잘 그린 그림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그림 대신 약도를 그린다면 약도는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다. 기술자는 글쓰기를 약도 그리 듯이 하면 된다. 기술자가 사무적으로 쓰는 글은 감정에 호소하여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주요 사실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기술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Technical Writing(TW)의 핵심이며,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기술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TW는 미국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글쓰기’이다. 50년의 전통을 가지고 공대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회사에서 초급 간부로 승진하면 반드시 배우는 분야이다.
약도 그리듯이 하는 글쓰기(TW)
사무적인 글쓰기는 약도 그리듯이 글쓰기의 기본에 맞추어 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글쓴이의 경험에 의하면 이공계는 누구나 6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고 제법 훌륭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아 왔다. 글쓰기를 약도 그리기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방향을 정하라: 읽는 사람을 고려한 글쓰기
약도를 그릴 때 먼저 방향을 정하듯이 글을 쓸 때도 먼저 방향을 정한다. 이때 방향은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고 글을 읽는 상대에게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장사에는 고객이 왕이듯이 글을 쓰는 데는 읽는 사람이 왕이다.
실무자는 보고를 할 때 자신이 일을 한 순서대로 한다. 그러나 결재권자는 중요한 사항을 먼저 보고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실무자가 하는 보고와 결재권자가 원하는 보고가 얼마나 다른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실무자가 하는 보고 |
- 자신이 한 일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 |
- 배경과 필요성이 먼저 나온다. 특히 책임이 따를까봐 문제제기를 우선한다. |
- 보고서는 두꺼워야 설득력이 있다. |
- 자신이 한 업무량과 보고서량을 비례시킨다. |
- 고생한 만큼 보고량이 증가한다. |
- 전문용어를 존중하고 자신에게 편리한 약어를 많이 쓴다. |
|
* 결재권자가 원하는 보고 |
- 결론이 먼저 나오기를 원한다. |
- 문제보다는 해결에 관심이 많다. |
- 보고서는 얇아야 경쟁력이 있다. |
- 사안의 중요성과 보고량이 비례하기를 원한다. |
- 중요한 사항 순으로 보고 받기를 원한다 |
- 알아들을 수 있는 일반 용어를 선호한다. |
일반적으로 자기 위주로 글을 쓸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문장에 주어가 없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야 어떤 일을 ‘누가’ 한지 잘 알고 있지만 읽는 사람은 주어가 없으면 ‘누가’ 한지를 몰라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생략 주어가 한 번은 ‘내가’ 되고 그 다음은 '네가‘가 된다면 읽는 사람은 혼란을 넘어 화까지 나게 된다. 문장에 주어를 생략하면 그만큼 글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문장에 주어가 없으면 의미가 모호해져 오히려 글자 수는 많아진다.
2. 길 구도를 그려라: 논리적인 틀이 있는 글쓰기
가. 목표를 부각시켜라: 주제 중심의 전개
약도에서 방향을 결정하면 다음은 목표를 정하듯이 글쓰기에서는 주제를 정한다. 다음은 목표와 주제가 가지는 공통점이다.
1) 목표도 하나, 주제도 하나이어야 한다.
2) 목표가 분명해야 하듯이 주제도 분명해야 한다.
3) 목표가 구체성을 가져야 하듯이 주제도 구체적이어야 하다.
나. 가는 길을 결정하라: 글의 구상
약도에서 가는 길을 잡듯이 글도 정해진 순서대로 전개해 나가야 되는데 이를 글의 구상이라고 한다. 글을 시간 순이나 공간 순으로 적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논리적인 순서로 적는다. 논리적 구상은,
1) 글의 전체 윤곽을 3단으로 도입-전개-정리나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눈다.
2) 글의 각 부분 배열을 규칙적으로 한다.
가) 문제-해결 또는 해결-문제로 배열한다.
나) 원인-결과 또는 결과-원인으로 배열한다.
다) 중요한 순서나 동등한 내용을 성격별로 배열한다.
라) 비교나 대조 또는 옹호나 비판으로 배열한다.
글의 전체와 부분을 개략적으로 나타내는 구상이 끝나면 이를 개요도로 작성한다. 약도에서 큰길, 좁은 도로 및 골목길로 나누듯이 글의 개요도는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주된 가지를 정하고, 주된 가지 별로 몇 개의 부수 가지를 정한다. 필요시에는 부수 가지 별로 몇 개의 세부 가지를 정한다.
다. 큰 길을 중심으로 구도를 잡아라: 문단 구조
큰길 몇 개로 구도를 잡듯이 글도 문단 몇 개로 구조를 잡는다. 문단은 하나의 소주제를 포함하게 하고 이들 소주제가 논리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출발지에서 목표지까지 잘 흘러가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글에서 핵심이 되는 문단의 형식적인 구조를 이해하여야 하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한 문단은 한 소주제만을 다룬다(One paragraph, one topic).
나. 문단은 소주제문과 이를 뒷받침하는 뒷받침문장들로 구성한다.
다. 문단은 6개 내외의 문장으로 구성한다.
라. 한 문장은 한 개념만을 다룬다(One sentence, one idea).
마. 문장은 길어도 16 ~ 20 개의 단어(1.5 줄 이내)로 구성한다.
바. 한 단어는 한 의미만을 갖는다. 즉 문맥에 맞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한다. (‘一物一語’의 법칙)
3.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려라: 간결하고 명확한 글쓰기
마지막으로, 약도를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하듯이 글도 핵심 내용을 한눈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은 바쁘고 읽어야 할 글도 많아 글을 선택적으로 읽는다. 그렇기 때문에 약도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큰 건물 몇 개만 단순하게 표시하고 헷갈리는 부문이 없도록 하듯이 글도 간결하게 하고 의미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다음은 이를 위해 유의할 사항이다.
가. 읽는 사람이 제목과 소제목에서 내용의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나. 결론을 향해 최단거리로 직행한다.
다. 간결은 최고의 예술이다. 처음 쓴 글은 반 이상으로 압축이 가능하다.
라. 형용사와 부사, 비유가 적을수록 좋은 글이다.
마. 모호한 표현은 틀린 표현보다 더 나쁘다.
이와 같이 약도 그리듯이 쓴 글은 건물에 비유하면 반듯한 뼈대에 해당한다. 부하가 써온 글을 고치기보다 내가 새로 쓰는 것이 더 나은 것도 반듯한 뼈대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글이 반듯한 뼈대만 갖추면 글의 80 % 이상은 완성된 것이다. 이제까지의 글쓰기 교육이 대부분 뼈대보다는 내부 장식의 성격이 강한 문법이나 표현 방법에 치중하여 그 효과가 미미하였다. 문법이나 표현 방법은 80 %의 완성도를 달성한 후에, 시간이 있고 취미가 있을 때 착수할 단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뼈대가 반듯하고 논리적인 글은 번역문제도 싶게 해결할 수 있다. 현재는 자동 번역율이 매우 낮은데 이는 우리 글의 뼈대와 논리가 반듯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문장이 주어가 없고 복문과 중문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동 번역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더욱이 요즈음은 전문 분야가 세분되어 있고 워낙 전문적이어서 국내에서 외국어 번역가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뼈대가 반듯하고 논리적인 글은 쉽게 자동 번역이 되고 이를 외국의 TW전문가가 알아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번역 서비스(추천 싸이트 참조)를 활용하면 값싸고 빠르게 번역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