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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스코드/바람 칼럼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


어릴때부터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린이날 선물이나 생일 선물은 항상 프라모델을 원했다. 비행기, 탱크, 자동차, 잠수함까지 만들어 보았다. 그중 상당수는 건전지를 넣어 움직일 수 있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잠수함을 넣어 앞으로 가는 것을 보며 기뻐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나는 “덕후”기질이 다분했었던 것 같다.


책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집에서는 항상 누워서 책을 보는게 버릇이 되었다. 책을 빌릴 도서관이 주변에 없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다. 30권짜리, 50권짜리 전집을 사면 3일에서 길면 일주일에 다 읽었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학교에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다. 거긴 신간은 없었고,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이상한 책들은 가득했다. 난 흑마술을 학교 도서관에서 접했다.


중학교 때 지금은 폐간된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를 구독했다. 특집기사로 Z80을 이용한 마이컴제작이 있었다. 부품조차 구하기 힘든 당시에 최신(?) 8비트 마이컴을 만들어보겠다고 덤벼들었다. 결과는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해서 실패. 비록 마이컴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광석라디오를 만들고, 멜로디벨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어른들을 친구로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난 그래도 꽤 재미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울려서 몰려다니기 보다는 차분히 한 자리에서 책을 보거나 이야기하거나 무언가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놀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치기 어린 장난을 치는 것도 놀이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마음이 즐겁다면 그것이 곧 놀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가 되고, 다시 생활을 즐기는 호모 루덴스가 된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존재의 유별난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드러나는 다양성의 각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4:1 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2017년 더 강력해진 알파고가 커제와의 승부에서 3:0 승리를 거두었다. 인공지능이 프로기사를 이긴 것을 보며 어떤 이는 두려움을 느끼고, 어떤 이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런데 정말 슬픈 일일까?


10자리 숫자들의 곱셈을 사람보다 계산기가 빨리 한다고 절망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귀찮은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포크레인이 가장 힘센 사람보다 더 많은 흙을 더 빨리 퍼낸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없다. 열흘 걸릴 일을 하루에 해결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절망으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은 인간이 지금까지 해왔던 힘들고 번거로운 작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인공지능 무인자동차가 등장하면 졸린 눈을 부릅뜨고 온갖 신경을 쓰며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기계에게 진 것이 아니라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직관에 의해 좋다고 판단한 바둑의 수를 이제는 빠른 계산이 가능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얼마나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게임기에 지나지 않았을 컴퓨터가 프로그램이 가능한 사람들에 의해 이제까지 계산하지 못했던 바둑이라는 세계의 막연했던 좋고 나쁨을 구체적인 수치로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알파고가 이세돌이나 커제를 이긴 것은 기계가 인간을 이긴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를 이용한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인간이 인간답게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사용할 의무다.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공동체에게 4차 산업혁명시대의 기술은 타인을 돕는 도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버린 이에게 신기술은 타인을 향한 칼이다. 새로운 세상과 그 세상에 속한 기술은 우리 앞에 던져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을 이것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이다. 


소수에게 종속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다수에게 공개된 인공지능, 빅데이더, 클라우드는 이제까지 거대 기업의 전유물이었던 언론, 방송을 개인이 다룰 수 있게 한다. 다양한 소셜 네트웍이 존재하고, 누구나 그 서비스를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면 만들 수 있게 된 사회 속에서 정보의 은폐는 불가능해졌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것을 이용하려는 의지와 올바른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면 한국의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한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도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고민한다. 걱정을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여전히 사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래도 내 아이가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 공감이 된다. 당장 지금까지 하던 모든 것을 끊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아이와 부모에게 들이밀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정말 10년 후, 20년 후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더 고민한다면 이제는 지금까지 투자하던 것을 서서히 줄이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해야 한다. 


과거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슈퍼 컴퓨터를 가진 기관만이 할 수 있었던 영역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클라우드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사용한 시간만큼 비용을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잘만 사용하면 공부하면서 돈이 들어갈 일은 없다. 구글과 MS, 아마존이 클라우드 경쟁을 하고 있어서 학생이나 개발자에겐 거의 1년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새로운 공부를 해보자.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부를 해보자. 그리고 그 공부가 나를 이롭게 하고, 우리를 이롭게 하자.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의식을 만들어보자. 새로운 세상을 즐기며 민주시민의식을 구현하는 것,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를 절망적인 터미네이터의 미래가 아닌 권력과 힘의 분배가 이루어진 즐거운 민주시민사회로의 한걸음 다가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