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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스코드/바람 칼럼

왜 대안 교육 진영은 4차 산업혁명을 거부하는가?


2017년 1월 17일, 민들레 연례포럼에서 제기된 주제인 "미래가 그렇게 오지 않는다면?" 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부정적인 혹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굳이 우리가 왜 거기에 끌려다녀야하느냐는 심정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췌된 글과 이후에 받은 글에서 이러한 입장은 더 강경해 보인다. 왜 그럴까? 왜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교육은 공동체를 위한 시민교육과 배치된다." 고 말하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과 대안교육, 혹은 노동자들의 권리는 정말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정확한 답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기사의 내용을 통해 한국에 있는 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짚어보면서 그들의 안경과 나의 안경을 기록해본다. 



I.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생각


4차산업혁명, 한국은 없다? [2017.01.23. 한겨레]

정재승 교수는 지난해 말에, 틀림없이 곧 ‘4차산업혁명은 없다, 가짜다, 허구다’는 등의 얘기가 나올 거라 봤다며 말을 받았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데이터로 얼마나 축적할 수 있는지가 4차 산업혁명의 관건이다. 우리는, 바로 시작하고 싶어도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반이 많지 않다. 데이터 자체가 없고, 있는 정보도 사용하려 들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비식별 데이터마저도 서비스에 사용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빅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키우지 않았고, 사물의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 했지만 표준화 노력도 없었고 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전통 제조업이 정보기술(IT)을 받아들여 제품·서비스를 혁신하는 게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다. 핵심 부품이나 물성 중심의 기존 사고에서 데이터라는 만질 수 없는 것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제조업의 사고가 바뀌고 훈련돼야 한다. 물성과 데이터 이 둘의 결합·조합은 어려운 일이지만 서로 스며들어 성공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산업 전반에 나타날 것이다. 해외 성공사례를 기다렸다가 뒤쫓아가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먼저 시도해보는 기업이 그 혁명을 이끌 것이다.”


1.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생각

정재승 교수는 정확하게 한국 기업과 한국 기업가들의 경영방침을 짚었다. 우습게도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가장 받지 않는 국가다. 말로는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항상 같았다. 당장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을 원한다. 말로는 RND 를 외치지만 정작 기업이 쓰는 돈은 외국에서 잘 팔리는 상품을 가져와서 재포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두이노를 사용하면서 Google, Thingspeak, Bamboo, Pachube 등을 사용해 보았다. 외국계 IoT 서비스다. 내가 집에, 혹은 차에, 혹은 거리에 먼지센서를 달고, 온도센서를 달고, GPS 센서를 달고 아두이노를 통해 IoT 서비스에 접속해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센서의 갯수가 제한되어 있지만 개인이 사용해 보이게는 만족할 만하다. IoT 가 인구에 회자될 때 한국 기업들은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었다. 대기업들이었고, 그래서 뭔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개점 즉시 휴업상태다. 초창기에 만들어두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낀것 같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데이터마이닝, 무인자동차 등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이세돌을 이겼다. 이제야 한국 기업들이 바빠졌다. 이게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뛰어든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센서도 없고, IoT 망도 없다. IoT 전문가도 없고,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도 없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개발자는 SI 쪽이다. IoT 에 대한 프로토콜을 설계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 외국으로 갔다. 남은 건 빠른 영화 한편을 10초에 다운 받을 수 있는 인터넷뿐이다.


2.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생각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하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쉽게 조정하기 위해 쓰는 얄팍한 술책이다. 올지 안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부정확한 예언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미래가 어떻게 되든지 그것보다 당장의 노동권에 대한 확립이 먼저다. 노동자라면,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라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노동운동과 관련된 이들이 하는 모든 곳에서 이런 생각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곳이 대안교육진영이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6년째 보내는 입장에서 이정도의 주장은 할 수 있다. 대안교육진영은 시야가 무척 좁다. 그리고 아주 보수적이다. 그들이 가진 정체성과 그들이 해왔던 방향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못견뎌한다. 결국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안학교를 떠난다. 공교육에서 상처받았던 이들은 다시 대안교육에서도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다. 


3.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생각

미지의 세계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다. 그래서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불안과 공포로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 자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그런 불안이다. 이런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을 무서워한다. 게다가 지금은 한국사회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부채질한다. 서구사회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빠른 인터넷속도만이 IT 강국의 조건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10초면 영화한편을 다운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보면서 자신도 IT 에 가깝게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세돌의 패배는 충격이었고, 미래는 매트릭스의 어두운 화면처럼 다가왔다. 무지는 공포를 키운다. 세계 챔피언을 이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다가온다. 터미네이터의 미래가 꿈속에서 다가온다.

두번째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세돌이 졌고, 그래서 잠간 놀라기는 했지만 그게 뭐가 어때서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달라진 것은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 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 주변에 뭔가 달라진 것이 없다. 음성인식기능과 번역기능에 놀라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네 삶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 잘 살수 있다고 여긴다. 미래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이끌어갈 것이고, 자신은 그 속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잘 살아갈 것이라고 여긴다.


II. 왜 대안교육진영은 4차 산업혁명에 거부감을 드러내는가?

아마도 첫째, 무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평화와 행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선지자적 책임의식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여러곳에서 갑자기 떠들어대니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그 와중에 이 모든 것이 별것이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해야했고, 특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별일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용자, 혹은 자본가로 불려지는 이들을 위한 패러다임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을 고려한 교육은 재고의 가치도 없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교육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들어간 모든 것을 더이상 언급하거나 배우려는 시도조차 거부하는 듯 하다.

세째,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지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면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먼저 받아들였다. 실제로 오픈소스진영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무지하다. 이들은 오픈오피스를 사용하지 않고, 포토샵을 쓰느니 아예 안쓰는 쪽을 선택한다. 지금의 대안교육진영에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 중에 GIMP 라는 오픈소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은 자본가나 기업에서 먼저 만든 것이 아니라 오픈소스진영을 이끄는 해커들의 공유와 협업의 정신속에서 Maker 라는 운동이 일어났고, 여기서 가능성을 찾은 기업들이 Maker 운동을 지원하면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픈소스가 없었다면, 아두이노가 없었다면, Maker 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빠른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